누가 ‘승리’의 시나리오를 말하는가?

한강

지난겨울의 촛불들을 기억한다. 부패한 정부에 항의하는 시민들 수백만 명이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흰 종이컵에 양초를 끼워 들고 함께 노래하며, 대통령 퇴진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나 역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촛불을 밝혀 들고 거리에 있었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였을 때에는 시청 앞의 커다란 광장과 네거리에서도 마치 만원 지하철에 들어선 것처럼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놀라웠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얼굴이 마주치면 저마다 미소를 지었다. 조심스럽게 행진의 흐름을 터주고 서로서로가 몸을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것을 이제 우리는 ‘촛불혁명’이라고 부른다. 당시에는 ‘촛불집회’라고, 혹은 ‘촛불시위’라고 불렀다. 이 단어들의 조합은 모두 독특하고 이상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촛불이라는 것은 원래 지극히 고요하고 평화로운 사물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혁명의 과정에는 폭력이 거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급진적인 정치적 실험이자 질문이었다. 오직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바꾸는 일이 현실 세계에서 가능한가? 마침내 폭력 사태 없이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거쳐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투표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었다.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 정부에 복무했던 문제적 인물들은 사법적 절차에 따라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너무 이상적이어서 오히려 믿기지 않는 승리였다.

그러나 이즈음 한국인들에게는 이 승리를 음미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며칠 전 우연히 본 뉴스 기사가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 칠십대 남자가 오백만원어치 현금 뭉치 두 개를 실수로 길에 떨어뜨렸다. 우연히 그 돈다발들을 발견해 나눠 가진 두 사람이 경찰의 추적 끝에 붙잡혀 돈을 반납하고 입건되었다. 여기까지는 아직 평범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노인이 천만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가 특별했다. ‘전쟁이 날까 걱정돼 은행에서 적금을 깨고 돌아오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손자들의 대학 등록금으로 선물하기 위해 사 년 동안 매달 이십만원씩 모은 돈이었다고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 1950년이었으니, 칠십대인 그에게 전쟁은 유년 시절의 지워지지 않는 원체험이었을 것이다. 이후 소시민으로서 평생을 살아왔을 그가 적금을 깨기 위해 은행으로 걸어가던 순간의 마음을 나는 상상한다. 그 공포와 불안, 무력하고 초조한 마음을.

그 노인과 달리 나는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 속한다. 북쪽 국경을 넘는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불가능했고, 지금까지도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누구와도 만나거나 연락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으니, 나를 포함한 전후 세대의 사람들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는 때로 일종의 초현실적인 인식 대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 또래의 동료 작가는 비무장지대 북쪽이 바다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치 반도가 아니라 섬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물론 이성적으로 나는 알고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평양이 존재하며,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휴전중이라는 사실을.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오직 지도와 뉴스뿐이라는 사실이, 엄연히 실재하는 존재를 환영이나 신기루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특수한 상황이 육십여 년간 지속되면서, 한국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무관심과 긴장이 팽팽하게 혼합된 모순적 감각을 체득해야 했다. 이따금 외신들은 남한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신기해하며 보도한다. 최근에는 ‘한국은 북한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란 기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건 거의 사실처럼 보인다.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국인들은 유난히 침착해 보인다. 어제 북한이 핵실험을 했어도, 오늘 아침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가능성이 보도되었어도, 학교와 병원, 책방과 꽃집, 극장과 카페는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연다. 어린아이들은 노란색 유치원 버스에 올라타 창밖에서 배웅하는 부모들에게 손을 흔들고, 말릴 시간이 없어 아직 머리카락이 젖은 중학생들은 교복 차림으로 버스에 오르며, 연인들은 꽃과 케이크를 들고 카페로 향한다.

그러나, 이 평온함이 과연 한국 사람들의 진정한 무관심의 증거일까? 모두가 정말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둔감하고 초연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긴장과 공포는 오히려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무심한 대화 속에서도 언뜻언뜻 농담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정말 전쟁 나는 것 아니야?’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이런 노력은 다 소용없겠지?’ 마치 우리가 종교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불교적 사고방식이 내면화되어 ‘우리는 전생에 어떤 사이였을까?’ ‘다시 태어나면 나는 새가 되고 싶어’라고 가볍게 농담하곤 하는 것처럼.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이 긴장이 점차 상승되는 것을 매일매일의 뉴스에서, 그리고 우리의 초조한 내면에서 동시에 목격해왔다. 집과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방공호가 어디인지 사람들이 검색해 확인하기 시작했다. 추석을 앞두고 과일과 한과 상자 대신 ‘생존 배낭’—랜턴과 라디오와 의약품과 비스킷이 담긴—을 가족 선물로 준비하기도 했다. 기차역에서, 공항에서 전쟁에 관련된 뉴스가 방송될 때면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 멈춰 서서 근심 어린 얼굴로 지켜본다. 그렇다. 우리는 우려하고 있다. 국경을 맞댄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해서 방사능이 유출될 직접적인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점점 더 가속되는 말의 전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지키고 싶은 일상이 있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오천만 명의 사람들이 반도 남쪽에서 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유치원생만 칠십만 명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그저 단순한 숫자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1980년 한국에서 일어난 광주항쟁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쓰는 과정에서, 나는 단지 광주에 대한 자료만 읽는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보스니아, 신대륙의 학살까지 범위를 넓혀가야 했다. 내가 끝끝내 마주보아야 했던 것은 결국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이 세계의 역사 속에 또렷이 드러난 보편적인 인간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기에 그토록 잔인하게 타인을 해치는지, 그러한 폭력 앞에서 끝끝내 존엄한 인간으로 남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나는 질문하고 싶었다. 그 근본적인 질문 속에서, 인간의 야만과 존엄이라는 두 개의 까마득한 벼랑을 연결할 허공의 길을 더듬어 찾고 싶었다. 그렇게 자료를 모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몇 가지 사실 중 하나는, 모든 전쟁과 학살의 메커니즘에는 인간들이 어떤 인간들을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 인식하는—민족, 인종, 종교,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이유로—첨예한 지점이 존재해왔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최후의 저지선은 그 모든 편견을 이겨내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온전하고 진실한 인식이라는 깨달음도 그와 동시에 찾아왔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단순한 연민을 넘어서는 실천적 의지와 실행이 매순간 우리에게 요구된다는 사실도.

남한 사람들이 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조심스러운 평온과 균형을 유지하려 애쓰는 이유 중 하나는, 나머지 세계보다 북한이라는 존재를 더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 권력과 고통받는 보통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분리해 지각하기 때문에,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 복합적으로 상황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인류의 오래된 질문이 생생한 감각적 실체로서 지금 우리의 얼굴을 마주 들여다보고 있다. 전쟁은 언제나 대의를 앞에 내세우지만, 감추어진 몇몇 집단들의 이익이나 판단의 오류, 그리고 거기에 무감각하게 편승하거나 이용되었던 보통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어왔으며, 그로 인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은 언제나 참혹하고 막대했던 사례들을 우리는 반복되는 세계 역사를 통해 배웠다. 우리가 인류적 연대의 방식으로 사태를 파악할 때, 감추어지고 외면되었던 인간 존엄의 문제가 또렷하고도 뼈아프게 진실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주변의 강대국들에 의해 한반도가 분할된 뒤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실행된 일종의 이념적 대리전이었다. 그 참혹한 삼 년을 통과하며 수백만 명이 살해되었고 전 국토가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 비극적인 과정에서 우리의 동맹국이었던 미군이 남한의 양민을 학살했던 몇 건의 사례들은 비교적 오랜 시간 감춰져왔다. 그 대표격인 노근리 학살은, 미군들이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포함한 민간인 수백 명을 철교 아래에 밀어넣고 수일 동안 다리 양쪽에서 총을 쏴 대부분을 살해한 사건이다. 왜 그래야만 했던가? 그들을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해도, 그들의 고통을 존엄한 인간의 것으로서 온전하고 진실하게 인식했다 해도 그런 일이 가능했을 것인가?

그후 육십여 년이 흐른 이제, 뉴스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말들에 나는 날마다 온 힘을 다해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네다섯 개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매일 이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전쟁은 미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일어날 뿐이다.’ 이런 말들을 가능하게 하는 사고방식은, 본질적으로 ‘인간 이하의 사람들’을 상정하는 퇴행적 인식 메커니즘에 기인하고 있지 않은가? 그토록 많은 과오와 참혹과 고통을 딛고 여기까지 걸어온 인류가, 이 위태한 경계 위에서 다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균형을 잡고 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날카로운 대치 상황에서 오직 대화와 평화의 해법만을 말하는 남한 정부를 향해 미국의 대통령은 이렇게 불평한 바 있다. ‘그들은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건 정확한 지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진실로 하나만을 안다. 평화가 아닌 어떤 다른 해법도 무의미하다고 믿으며, ‘승리’라는 부조리하고 불가능한 구호를 믿지 않는다. 결코 또 한번의 대리전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직 촛불이라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도구로 사회를 바꾸기를 원했고 마침내 그것을 실현한 사람들, 아니, 그저 연약하고 깨끗한 생명을 지닌 아기의 몸으로 이 세계에 태어났다는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 이미 존엄한 낱낱의 인간들 수천만 명이, 날마다 카페와 찻집과 병원과 학교의 문을 열며, 샘처럼 매 순간 솟아나는 가능성으로서의 미래를 위해 한 걸음씩, 우리들 인류의 시간 속에서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누가 그들을 향해, 평화가 아닌 다른 시나리오에 대해 말하는가?

* 올해 10월 8일자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실렸던 글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남한은 전율한다」는, 이 초고의 삼분의 일 이상을 부분부분 덜어내고 전체적으로 맥락을 다시 다듬어 종이신문의 규격에 맞춘 것이었다. 신문사에서 붙인 제목과 달리, 원문의 제목은 ‘누가 ‘승리’의 시나리오를 말하는가?’였다. 기사 게재 후 삼십 일간 뉴욕타임스에 저작권이 묶이기 때문에, 모국어로 쓰인 원문을 이제 이 지면에 실을 수 있게 되었다.

기고문을 청탁받은 것은 5월이었지만, 당시에는 정중히 사양했다. 그후 말들의 전쟁이 가속화되면서, 쉽게 전쟁을 말하는 위정자들의 태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한국에는 어떤 위기에도 무감각하고 둔감한 익명의 대중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국외의 분위기도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오직 한 가지, 여기에 구체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실감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뉴욕타임스를 읽는 현지의 독자들을 향해, 평화를 믿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전쟁의 가능성에 맞서기를 침착하게 제안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래서 개인적 견해보다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실제로 주변에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정을 전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나약하고 무력하게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옹호하는 존엄한 사람들로서 한국인들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사족이지만, 북한의 독재 권력의 부당성은 모두가 당연하게 공유하는 상식적인 전제로서 바탕에 깔려 있으며,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거시적, 복합적인 인식은 북한이라는 구체적 전쟁 발발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적 인식과 모순되지 않는다.

이 글이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의 단위를 넘어 보편적 인간의 관점으로 전쟁과 학살의 의미에 대해 간결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이 질문 앞에서 철저하게 결백한 민족과 국가는 지구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하기에 더더욱 전쟁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 평화를 위해 연대하는 일이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다. 그것이 설령 어떤 가시적인 효력도 가질 수 없다 하더라도, 단지 찻숟가락 하나만큼이라도 생명의 의미를 지키는 데 미미한 힘이 될 수 있기를 빌었다.